다시 읽는 이슬람 과학


다시 읽는 이슬람 과학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 중 그 기원이 아라비아 어에서 온 단어들을 영어 단어 혹은 라틴어와 비교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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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슬람 과학
 
  찬란하던 고대의 문명이 비쟌티움에서 점차 그 빛을 잃어 가고 있던 때, 동방 아라비아에서는 그 빛을 이어갈 문명이 새로이 잉태되어 가고 있었다.
  아라비아는 오랜 옛날부터 대상(Caraban)들이 동서(東西) 무역의 중요 거점으로 이용한 곳이었다. 특히 메카는 그 중심도시로서 손색 없는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인도로부터는 진귀한 보석과 각종 향신료(향신료 중에서 특히 유럽을 그 주요 대상국으로 했던 후추는 이들에게 특히 중요한 무역 품목 중에 하나였다)들이, 더 멀리 중국으로 부터는 형형 색색의 아름다운 비단이 그리고 홍해 저편으로 부터는 상아가 이곳 메카로 운반되어 거래되었다. 이렇게 메카는 오로지 무역에 의해 도시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가는 상업의 도시였고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수공업이나 농경이 크게 발달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메카에서의 번영은 오래가지 못하고 점점 쇠락의 기운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메카의 거상들은 대부분 부의 척도로서 상당량의 금(무역 거래의 통화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것들의 상당량이 비잔틴 제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하면서 경제를 장악하고 있던 그들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 했고 아울러 그들이 동방 무역을 위해 이용했던 무역로를 페르시아에게 장악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이는 곧 페르시아와 비잔틴이 메카 대신 새로운 동방 무역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메카의 경제 기반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메카의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메카의 대상들은 이러한 현실에서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차츰 고리 대금업에 의존하게 되지만 그 대상이 주로 인근의 상인들이나 농민, 유목민 그리고 베두인들이었으므로 이는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반목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유태교와 기독교 그리고 다신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가 불안한 현실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메카출신의 대상이었던 무함마드(profit Muhammad /AD 570 ~ 632)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그에게 계시된 종교(Islam)는 이전의 종교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다시금 믿음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며 너무나 현실 타협적이 되어버린 이전의 종교를 대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이슬람교가 메카, 나아가 전 아라비아 반도로 퍼지기까지 아무런 마찰도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의 이슬람은 그 종교의 발상지였던 메카의 대상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탄압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한때 종교의 중심지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지기도 했다. (Hijra 622년. 이슬람 원력)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이슬람은 종교적 힘을 더욱 강력하게 발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메디나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되기 시작한 '이슬람 공동체'는 단순한 신앙 공동체로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행정 기구, 입법 기구, 사법 기구의 형태를 띤 독립적 사회 공동체의 틀을 형성하며 그 세력을 점점 넓혀 나가게 된다. 사도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틀이 형성한 이슬람 공동체는 메카로 부터의 이주 10년 만에 다시금 메카로의 입성을 이루게 되며, 이것을 계기로 이슬람은 아라비아 전 지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발판을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뭉쳐진 이슬람 국가는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이집트를 되찾고 시리아, 페르시아, 팔레스타인으로 영역을 넓혀 갔으며(AD661년) 남쪽으로는 인도를, 그리고 천자(天子)의 나라인 중국의 접경 지역과 북 아프리카 지중해 전역과 스페인(endulus) 일부까지 그 영향하에 들어가게 된다.( AD750년)
 
11세기 이슬람 제국
이러한 영토 확장의 결과로 AD750년부터 AD1085년경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쳐 이슬람 문화는 급속도로 퍼져 나가게 된다. (돕고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이름도 아라비아어에서 유래된 것이니 당시 그들 세력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펴져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에서도 보았듯이) 그 광대한 영토를 확장하고 문화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그리 빨리, 그리고 어떻게 적은 마찰 속에 그 모든 것을 이루고 지킬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슬람의 영토 확장이 여느 역사서에서 소개되었듯이, 약탈과 파괴를 동반한 수탈적 성격의 전쟁과는 다른 성격을 띠었을 뿐만 아니라, 점령 후 그들이 피정복민들에게 취했던 정책이 피정복민의 문화, 종교, 기타 사회 전반에 걸친 말살 정책이 아니 였기 때문이다.
이 영토 확장의 과정을 통해서 이슬람 교도들이 선택했던 것은 이방의 문명에 대한 파괴와 탄압이 아닌 수용과 존중이었다.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그들은 피정복자들의 선택권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위해서는 파괴보다는 화합이 필요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식민 정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앞서야 하는 것은 그들의 포용 정책이 10C 이슬람 문명이 찬란하게 꽃 필수 있게 한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라비아 반도에는 새로운 세기가 동트고 있다. 찬란한 그들의 문명기가 동트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들에게는 더 이상 전쟁은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었다. 전쟁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는데 그건 발로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실제로 10C말에는 750년을 전후로 해서 형성된 그들의 영토가 거의 그 규모면에 있어서 달라 진 것이 없었다.)
9C 부터 그들이 시작한 것은 바로 번역(飜譯) 작업이었다. 아라비아인들에게는 이방의 철학서나 지리서, 의학서 등에 담긴 지혜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번역 작업은 4대 칼리프였던 알마문(Al-Ma'mun / AD813 ~ 833)에 의해서 구체화 되는데 그는 체계적인 번역 작업을 위해 '지혜의 집(Bayt al-hikmah)'을 바그다드에 설립하고 후나인 이븐 이스하크(Hunayn ibn ishaq AD808 ~ 873)를 통해 이를 관장하게 한다. 이븐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공동 작업으로 번역을 하였는데 이븐에 의해 시리아어로 번역되어진 그리스 과학 문헌들이 다시 그의 동료들에 의해 아랍어로 번역되는 식의 과정을 통해서 체계적인 그리스 과학 문헌 집을 완성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번역된 책들에는 철학서, 지리서, 의학서 뿐만이 아니라 산술(Arithmetic)이나 기하학(Geometry), 천문학에 관한 것도 있었으며 음악이나 문학서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의학서의 경우는 번역 작업의 초기부터 이루어 졌으며 번역 과정을 통해 이들은 그리스 철학(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사상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때론 좀더 직접적인 탐구를 위해 그들은 이방의 학자들을 칼리프의 궁으로 직접 초대하여 사사 받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한다.
당시 그들의 이러한 열정을 잘 나타내 주었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서고(書庫)' 이다. 물론 칼리프의 궁에는 잘 정돈된 서고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을 돌려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은 칼리프의 궁 안에 있었던 서고가 아닌 바그다드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책방 '나디움'이다. 눈을 감고 한번 상상해 보자. 그 거리를 찾아 책방 안으로 들어 가면 우리는 그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의 책들과 그 수량으로 인해 우선 놀라야 할 것이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그 곳 '나디움'에서 아름다운 페르시아의 시집도 그리스 철학자의 철학서도 그리고 머나먼 인도로부터 온 수학서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며, 뭔가 특별한 것을 찾길 원한다면 주인의 손에 쥐어진 '피프리스트(서적 카달로그)'를 잠시 펼쳐 보아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특별한 책들도 접할 수 있는데 역사서인 '타바리(Tabari)'가 그러하며 또한 지혜의 서인 '샤프리스타니', 너무도 유명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Almagest)' 등은 그 가치를 논하고 또 논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 바그다드의 책방 '나디움'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당시 그들에게 있어 학문에 대한 열정이 칼리프에게만 한정되어졌던 것이 아니며 또한 그 만이 누릴 수 있있던 특권도 아닌 사회 전반에 걸친 일종의 그들의 사회적 공감대였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다마스커스(Damascus)뿐 아니라 바드다드(Baghdad) 그리고 부하라(Bukhara), 우르겐치(Urgenc)등의 도시가 있었으며 또한 이 곳에서는 아라비아인 뿐만이 아니라 페르시아인, 유대인들도 쉽게 대할 수 있었다.(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정책은 보여지기 위한 정책이 아니 였으며 실제로 이교도들이 사회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아라비아인들과 동등하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 졌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교도'라는 의미는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자신들과 사회적 구분을 짖기 위한 수단으로서는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이슬람 제국의 역사를 통해서 보면 모든 칼리프들이 학문적 열정으로 타 문명(타 민족)에 대해 항시 너그러웠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초기의 칼리프였던 오마르(Umar)는 이방의 학문을 존중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알렉산드리아 점령 시 모든 도서관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슬람 제국 역사를 볼 때 타 문화, 타 종교에 대한 그들의 일관된 중심 정책은 탄압에 의한 말살 정책이 아닌 존중과 수용을 통한 화합의 정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위에서 우리는 이슬람 발생전의 메카 그리고 이슬람의 발생과 공동체의 형성,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 제국으로서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 이방 문화를 받아들인 그들의 정책 등을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중세 유럽의 과학 문명이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문명이 중세 유럽의 문명 발달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물 것이다. 우리가 이슬람 문명에 대하여 알고 있는 지식은 전반적인 흐름으로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부분적이며 편파적이다. (여기에는 다분히 교육적, 사회적 관계에 따른 여러 가지 영향의 결과라 할 수 있겠지만) 예를 들어 이슬람 문명(그나마 아랍의 문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으로부터 전해진 것들을 생각해 보자. 우선 아라비아 숫자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연금술. 아마 이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슬람 과학에 대한 보편적 지식의 한계 일거라 생각한다.
 
이제 이슬람 과학을 부분별로 구분하여 당시의 발달 정도와 후에 미치게 된 영향들을 간략하게 나마 정리해 봄으로서 고대 그리스에서 이슬람 문명으로 그리고 중세 유럽 으로 이어지는 문명의 역사적계보를 바로 세워보기로 하자.
 
 
 
(에스마 김선화)
 
………..
의학 (醫學)
 
  이슬람 제국에서 '의학'은 사상적 학문이 아닌 상당히 실용적인 학문으로서 자리를 잡는다. 9C초에 시작된 번역 작업에 '의학'은 초반부터 포함되었을 정도로 그들의 관심 분야였다.
   이슬람 의학에 주된 영향을 미쳤던 것은 '갈레노스'의 의학 체계였다. 그의 의학 사상은 단순한 의학적 지식 뿐만이 아니라 논리학이나 자연 철학까지 포함하고 있었으므로 이슬람 제국의 의학자들은 갈레노스의 의학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의 전반적인 이해에도 힘썼다.(우측 그림: 번역된 그리스 의학서)
  
 초기의 이슬람 의학자로서는 알 라지(Al razi / AD865 ~ 925: 왼쪽 사진)가 있다. 알 라지는 '조건 반사', '천연두', '소아 질병', '홍역'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한 의학 지식의 소유자 였다. 또한 그는 당시의 의학 사상을 바탕으로 종합 의학서인 '의학 대전(Kitab al hawi)를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학에 대한 백과 사전으로서 이후 1279년부터 1542년까지 3C에 걸쳐 라틴어로 수없이 번역되어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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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의학자로서는 이븐 시나(Ibn sina / AD 980 ~ 1037: 아래 사진)가 있다. 철학자이기도 했던 이븐 시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의서(Al qanun al tibb)'는 12C유럽의 의과 대학에서 의학 교재로서 채택되어 15C까지도 그 분야에 있어선 최고의 자리를 지켰을 정도로 그 내용에 있어서 뛰어났다. 이 '의서(Al qanun al tibb)'는 의학에 대해 상당히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질병에 대하여 실질적인 설명을 담고 있어서 사상과 기술에 대한 조화를 잘 이루었다. 파리의 의과대학에 지금도 걸려있는 그들의 초상화는 그들의 의학이 유럽 의학 발달에 얼마마한 역할을 하였는가들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 외에도 이슬람 스페인(endulus)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의학자였던 '이븐 루쉬드(Ibn rushd /AD 1126 ~ 1198)' 등을 꼽을 수 있다.
 
 
(에스마 김선화)
 
………수학 (數學)
이슬람의 수학 또한 그리스나 인도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이들의 수학은 학문의 영역으로서 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발달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는 그 이름에서도 그것의 기원이 어디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당시 그리스의 숫자나 한자의 숫자는 일정 수 이상을 표기하기 위해선 다른 특수 문자의 표기를 요함으로 실용적인 면에서 상당히 뒤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라비아 숫자는 'O'의 개념을 도입함으로 아무리 큰 수라 하여도 자체적인 표기가 가능하였다.
  
중세 수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이슬람 수학자로는 '알 흐와리즈미(Al khwarizmi / AD780 ~ 850; 왼쪽 그림)'가 있다. 그의 이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아라비아 숫자를 뜻하는 영어의 Algorism은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그는 '미분 방정식'을 체계화 시킴으로 12C 유럽 대학의 교과서로서 채택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수(代數)부분도 이슬람 수학자들에 의해 상당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영어식의 표기인 Algebra(대수)의 어원이 아랍어임을 볼 때도 그 영향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9C 이슬람의 수학자인 '알 콰리즈미'의 저서 '알 자브르와 알 무카발라의 산법'의 제목에서 유래된 것이며 현대의 방정식과든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해법의 절차에 대하여 상당히 접근된 2차 방정식을 공식화 하기도 했다.
 
 
(에스마 김선화)
………광학 (光學)
이슬람 과학에서는 아라비아의 지역적 기후적 영향으로 광학분야가 특히 발달하게 된다.
이슬람의 광학은 '알 칸디(Al kindi / AD 870)' 와 '후아닌 이븐 이스하크' 그리고 '이븐 시나(Ibn sina / AD980 ~ 1037)' 세 사람에 의해 그 체계가 형성되었다.
광학 연구를 위한 안구 해부도
이 외에도 '이븐 알하이탐(Ibn alhaytham / AD 965 ~ 1039)'이 있는데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수학과 해부학을 결합, 이슬람의 광학을 체계화하고 발전 시켰다. 물체가 눈을 통해 인지되는 과정에서 뇌의 역할에 대한 그의 이론은 후에 근대 시각 이론을 정립하는데 많을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광선이 수면을 통과할 때 생기는 '입사각(入射角)'과 '굴절각(屈折角)'에 대한 이론을 밝힌 학자로는 파티마 왕조 당시의 광학자인 '이븐 알 하이샴'이 있다. 이외에도 그는 '반사광의 경로'를 밝히기도 했는데 이 이론은 현대의 '기하광학(幾何光學)'이라는 광학 분야로 발전되기도 한다. 또한 그는 무지개나 후광 등 광학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도 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연구 사상은 훗날 '로저 베이컨(Roger bacon)'과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등을 서구의 광학 사상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의 저서로는 '광학의 서(Kitab al manazir)'가 있다.
 
이외에도 이슬람의 문명은 서구 유럽 문명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음악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스페인의 서정적 음악은 이슬람의 음악적 분위기를 많이 담고 있으며 또한 여러 가지 악기의 명칭에서도 우리는 그 기원에 대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Lute(피리) : Al ud', 'Guitar(기타) : gitarah'등 이다.
그리고 조각과 건축 등도 상당히 발전하게 되는데 특히 도자기는 이슬람 스페인이 유럽 도자기의 원조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슬람 스페인(endulus) 에서 발전된 도자기 기술은 후에 프랑스, 이탈리아, 화란 등지로 전파된다. 또한 이슬람의 직조 기술은 서구에 인정 받는 분야로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Damascus)'와 이라크의 '모술(Mosul)'은 천의 명칭으로 굳어져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에스마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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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이슬람 과학

출처 : www.islamkorea.com\il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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