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주님으로서의 하나님)가 일신교 신자에게 미치는 영향

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주님으로서의 하나님)가 일신교 신자에게 미치는 영향

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주님으로서의 알라(하나님))가 일신교 신자에게 미치는 영향

그것은 그들을 혼란과 의심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타우히드 루부비야(주님으로서의 알라(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유일신)는 유일신을 믿는 알라(하나님)의 종이 혼란과 의심으로부터 보호받게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이 만물의 주님이신 알라(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혼동하거나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를 창조하고 그를 만들었으며, 누가 그를 관대하고 풍족하게 대했으며, 그를 땅 위의 대리자로 삼았습니까? 알라(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충족하도록 하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모두 그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인간은 주님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느끼고 함께 피난처를 찾습니다. 그는 인생은 짧고 선과 악, 정의와 부정, 그리고 즐거움과 고통이 뒤섞인다는 것을 압니다.

반면에 하니님이 주님임을 단념하고 알라(하나님)과의 만남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는 희망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들의 삶은 답이 없는 걱정과 혼란, 질문의 연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피난처가 없어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더라도 의심, 무질서, 불안 속에서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고통이고, 그 부정적인 영향은 밤낮으로 그들의 가슴에 와 닿습니다.

 

2.영적 평온함

실로 그 평온함은 오직 한가지의 근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알라(하나님)과 심판의 날에 대한 의심없고 위선이 없는 깊고 성실한 믿음입니다. 이것이 사실이 증명하고 역사가 뒷받침하는 것이며,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공정한 모든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걱정되고 괴로워하며 짜증나고 허무감과 상실감이 가장 큰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행복과 확실성을 빼앗긴 사람들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움과 흥미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사실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삶의 목적도 모르고, 목표도 이해하지 못하고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러한 상태에 있으면 어떻게 마음과 영혼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 평온함은 믿음의 열매이며 타우히드(알라(하나님) 한분께만 경배)는 주님의 허락을 받아 끊임없이 열매를 맺는 견고한 나무입니다. 고요함은 다른 사람이 괴로울 때 흔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이 불만족할 때 만족하고, 다른 사람이 의심할 때 확실하고, 다른 사람이 불만을 표할 때 인내하고, 다른 사람이 무모할 때 참도록 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좋은 향기와 같습니다. 이 평온함은 히즈라(이주)의 날 알라(하나님)께서 그의 사도 무함마드(알라(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의 마음을 채운 것입니다. 어떤 괴로움이나 슬픔도 그의 마음을 차지하지 않았고,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았으며, 의심이나 걱정도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알라(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너희 지도자를 도울 수 없다 해도 알라(하나님)께서 그분을 도우시니 불신자들이 그분을 추방 했을 때도 그랬느니라. 그분께서 한명의 동반자와 동굴안에 있었을 때 그의 동료에게 일러가로되 슬퍼하지 말라 알라(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 [꾸란 9장 40절]

선지자의 교우였던 아부 바크르(알라(하나님)께서 그를 흡족히 여기시길)는 그 자신이나 그의 생명이 아닌 알라(하나님)의 사도(알라(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를 위하여 걱정하고 타우히드의 전파를 위해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적들이 그들이 숨어 있는 바로 그 동굴을 에워싸고 있을 때에 말하기를 “알라(하나님)의 사도시여,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의 발을 내려다 보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우리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알라(하나님)의 사도(알라(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푸시길)께서 대답하였다. “아부 바크르여, 알라(하나님)을 세 번째로 함께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무슨 일을 당할 수 있겠느냐?” (무슬림이 전함), 이 평온함은 알라(하나님)께로부터 온 영혼의 일종이며, 놀란 이들을 진정시키는 평온함입니다. 불안할 때 안심시키고, 슬플 때 달래주고, 힘들 때 위로해주고, 힘이 없을 때 강하게 해주고, 혼란스러울 때 안내를 해줍니다. 이 고요함은 알라(하나님)께서 믿는자들을 위해 마련한 천국으로 향하는 창문이며, 그 창문으로부터 천국의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그 빛이 비치고, 향기와 향수가 남아 있습니다. 이 평온함을 통해 알라(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행한 좋은 일들을 맛보게 하고, 그는 그들에게 행복과 그들에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작은 샘플을 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만족, 달콤한 희망, 평화와 안정을 가진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알라(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고 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달자의 역할을 합니다.

 

3.알라(하나님)에 대한 신뢰

모든 것은 전능하신 알라(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익이든 해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알라(하나님)만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아르라자끄(양식을 베푸시는분) 알마리크(주인), 알무답비르(모든것의 관리자)이십니다. 그분은 천지의 고삐를 쥐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가 알라(하나님)께서 기록하시고 허락하신 것만 좋은 일과 나쁜일이 생긴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모든 창조물이 모여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한다고 해도 알라(하나님)께서 결정한 것 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알라(하나님)만이 모든 힘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알라(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알라(하나님)께만 경배할 수 있도록 일신론을 고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알라(하나님)께서 누구에게도 이로움을 끼칠수도 해를 끼칠수 도 없는 신을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알라(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늘과 대지의 열쇠들이 있어 알라(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그들에게는 손실만 있을 뿐이라.” [꾸란 39장 63절]

알라(하나님)과의 관계가 약할수록 홀란과 갈등을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4.알라(하나님)의 영광

이것의 영향은 전능하신 알라(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의 삶에 드러납니다. 오직 알라(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그의 의도와 기도는 그분만을 향하며 그분의 의지에 복종합니다. 믿는 자는 알라(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지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그분의 지식안에 두시며 들으시나니” [꾸란 6장 80절], 그리고 꾸란에 나오길 “주여 당신은 아무 의도없이 창조하지 아니하셨나니 당신에게 영광을 드리나이다.” [꾸란 3장 191절], 이 모든 것은 주님이신 창주주에 대한 마음의 애착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그의 기쁨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의 명령을 받들기 위해 노력하며, 알라(하나님)과 다른 신을 대등히 두며 우상숭배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영향을 끼치는 타우히드 루부비야(주님으로서의 알라(하나님)을 한분으로 두는 것)입니다.

알라(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만 그의 마음은 온전합니다. 고독을 느낄 때는 알라(하나님)과 함께 해야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슬픔이나 우울함도 알라(하나님)의 기쁨에 대한 지식과 진실함이 있을 때 해결이 됩니다.

유일신을 경배하는 믿는 자의 타우히드 루부비야(한분이신 주님으로서의 알라(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영향은 마음의 안정입니다. 그래서 그는 안정된 마음으로 일하고 생산하며 그의 마음은 슬픔이나 우울함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일어난 일이나 일어날 일들은 모두 알라(하나님)의 운명에 대한 것이고 알라(하나님) 한분만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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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주님으로서의 하나님)가 일신교 신자에게 미치는 영향